다녀온 전시 / 류성실 - 불타는 사랑의 노래
다녀온 전시, 다녀온 전시 / 류성실 - 불타는 사랑의 노래 아뜰리에 에르메스 Atelier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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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가만히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는 마음에 잔잔한 위로가 됩니다. 근래에 ‘불멍’이 유행하는 까닭이기도 하죠. 그런데 내가 바라보던 불덩이가 사실은 남의 집 ‘불구경’이 되는 순간, 모든 일은 더욱 흥미진진해집니다.
누군가의 진심, 열정을 태우며 꿈에 도달하려는 청춘들, 물질을 향한 욕망, 집착과도 같은 사랑 등, 타오르면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 것들 앞에 구경꾼이 되어 장관을 관조하는 일은 배덕감을 선사하죠.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나의 진심 어린 ‘버닝-burning‘이 누군가에게는 재화(goods)가 되는 순간,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기름을 붓고, 또 다른 이는 대가성이 짙은 치유의 제안을 슬쩍 건네기도 합니다. 이렇듯 주고받음이 분명한 현대사회의 순수한 욕망과 애절함을 요란한 장례 의식의 재료로 승화시킨 류성실 작가의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가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 중입니다. 이곳에는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지 라켓과 함께 애틋한 마음을 갖고 한번 방문해 보실까요?
편집/이미지 '보보'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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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번 호 라켓 리뷰는 류성실 작가의 작업 세계관에 기반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작가의 작업에 대한 배경 및 해석은 작업장에서 나눠주는 안내책자 속 작가와의 인터뷰 속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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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매장 입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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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도산공원 근처에 흐르는 부유한 기운은 에르메스 Hermés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생생한 현실이 됩니다. 갖고 싶어지는 향기로운 화장품과 향수, 실크 소재의 스카프를 유유히 지나 곡선의 계단을 통해 지하 1층의 카페 근처로 내려가면 전시장 입구에 도달하게 됩니다. ‘불타는 사랑의 노래’의 노랫말과 음률은 또 얼마나 애달플지 그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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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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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주는 기대감과는 달리 이곳은 공연장이 아닌 화장터입니다. 상주가 없는 다소 수상하고 스산한 장례식장의 전광판을 확인해보니 ‘대왕애견상조’의 업장에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곳은 입구부터 특이합니다. 평소 같았다면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뻔뻔하게 맞서던 근조 화환 무리가 이번에는 웬일인지 정중하게, 다소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린 채로 우리를 맞이하네요. 어디 유명한 회장님과 대표님이 보낸 화환인지 우리는 몰라도 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별 볼 일 없어 부끄러운 걸까요? 아니면 제가 알고 보니 ‘이세계’의 ‘형님’인 걸까요? 여담이지만 ‘대왕애견상조’는 여행 사업가였던 이대왕씨가 코로나 이후 가망이 없는 여행산업 ‘대왕 트레블’을 철수하고 상대적으로 회전율이 높고 투자비용이 적은 애견 장례를 시작한 사업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오늘의 주인공, 아니, 고인, 아니, 故고-애견은 바로 ‘공주(2008-12-09, 암컷)’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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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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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화강암 부조가 새겨진 벽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어떤 영웅과도 같은 인물이 통기타를 잡고 강아지들과 함께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흡사 천상계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담긴 애도의 벽에 가까이 다가가니 ‘대왕애견상조’를 스쳐 간 많은 애견들의 존함이 보입니다. ‘너울이, 기적이, 사랑이, 룰라, 떠중이, 샤넬이, 코코, 루비’ 등등, 생전에 견주들이 욕망하던, 아니, 아끼던 무언가가 투영된듯한 느낌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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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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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조 속 영웅의 주인공은 ‘웃으며 봉사하는 사명으로 노래하는 사명으로’를 깊게 새긴 이대왕 대표 자신의 모습이더군요. 엄청난 셀프 브랜딩의 일인자가 아닐 수 없음에 경탄을 머금은 채로 장례가 한창 진행중인 소각로 앞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식순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화강암은 왠지 얄팍하게 반짝거리는게 꼭… 싸구려 시트지 같네요? 인테리어 자재에 돈을 아끼신 거 같은데, 화장 하면서 같이 타버리면 어떡하죠? 우리 아이 가는 길을 맡겨도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애도 앞에 중요한 건 형식보다 마음이니까요. 추모영상이 나오길 기다려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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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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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3 누구를 위한 장례식일까? 공주? 견주? 아니면 이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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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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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故 공주님은 (2008-12-09, 암컷) 아주 귀여운 용안의 말티즈 또는 비숑 프리제로 추정되는 애견이네요. 생판 얼굴도 모르던 강아지를 추모할 수 있을 정도로 에디터는 귀여운 세상의 모든 것들 앞에서 한없이 약해집니다. 다소 경박스러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목소리로, 사람의 언어를 빌려 엄마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건네는 공주를 보며 견주는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해집니다. 저게… 내 새끼의 목소리라고요? 아이고, 하고 더 크게 울것만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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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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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소각로에 넣어 태우는 그 순간은 눈물과 픽셀화된 연기가 앞을 가려 차마 사진으로 담지 못하였습니다. 고인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생생한 연출의 현장이었거든요. 공주 엄마의 욕망이, 아니 사랑이 불타는 그 순간을 꼭 두 눈으로 보셔야 하는데, 이게 참 뜨겁고, 드라마틱하게 불타는 사랑 그 자체인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우리 공주님을 향한 추모곡도 이대왕 대표님께서 직접 제창해 주십니다. 자기 홍보의 달인, 엔터테이너 그 자체이십니다. 공주를 위한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이대왕 대표의 모습을 보니, 마치 작가가 빛나야 하는 전시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욕심 많은 기획자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나 밖에 모르던 놈 무정한 놈 그런 놈이 너를 만나’ ‘진짜배기 사랑, 진짜배기 사랑을 했다’. 멜로디는 고속도로 가요 테이프의 그것과 다를게 없고 가사는 나르시시즘이 가득합니다. 어느날 내 삶에 찾아온 강아지가 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루아침에 상실한 상주의 감정적 취약성과 불안을 공략한 사업적 전략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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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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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로켓처럼 창공을 날아오른 주인공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천국에 도달합니다. 사후 세계. 강아지는 착하니까 무조건 천국에 갈 텐데 그걸 굳이 또 콕 집어서 그래픽과 함께 강조하는 장면이 견주로 하여금 ‘영원함’을 낭만적으로 느끼게 할 것만 같습니다. 견주의 애끓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정성 어린 상조 직원들의 예를 갖춘 청구서가 곧 견주를 찾아올 텐데, 그때 다시 한번 공주를 떠올릴 쩐주, 아니 견주가 세운 통곡의 벽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채로 삼가 애견의 명복을 빌며 벽 뒤로 넘어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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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4 이래도 천국을 욕망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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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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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류성실의 작업에서 매우 익숙한 ‘사후 세계’는 마치 누군가의 사업장과 같고 그곳을 둘러싼 ‘영원함의 약속’은 고달픈 현실의 우리들을 유혹하는 공포스러운 찌라시 같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광경이 속된 말로 ‘빡센’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그가 생각하는 천국은 평화로운 주말의 목장이 아니라 주말 내내 운영하는 발칙하고 매력적인 디스코텍 같은 걸까요? 또한 그가 제시하는 천국으로 떠나는 방법은 사기성이 짙은 어떤 관광 사업 모델을 닮았고, ‘체리장, ‘나타샤’ ‘이대왕’ 등의 등장인물들이 나타나 관객을 끊임없이 잠재적 고객으로 초대합니다. 자신들의 실체 없는 사업을 예술의 경지로 포장하여 끌어올리면 절실함으로 눈 먼 누군가에게는 홀랑 속아 넘어갈 만한 감동이 되는 자본 세계의 측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이 주는 순수한 감동을 떠나 현실을 다르게 돌아보고 각성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여정이 궁금하다면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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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아뜰리에 에르메스,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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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아뜰리에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 주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평일 11:00 -19:00 /수요일 휴관 / 토요일 11시, 일요일 12시 오픈 19시 마감 ⚫ 기간 : 2022년 10월2일까지 ⚪ 문의 : 02-3015-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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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 작가의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속 이대왕과 그 무리가 유혹하는 아찔한 대왕애견상조의 화려한 서비스를 간접 체험하고 나니 문득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불타는’ 음식이 떠올라 근처 ‘웍셔너리도산’ 에서 매콤한 마파두부와 다른 볶음요리로 배불리 식사하고 ‘투썸 플레이스’에 방문하여 ‘아임 얼라이브-I’m Alive’ 콤부차를 마셨습니다. 아직 살아있으니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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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웍셔너리 ⚫ 위치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3길 12 1층 ⚫ 영업 시간 : 매일 11:30-21:00 / 브레이크타임 15:30-17:30 ⚪ 문의 : 070-8888-9878 @woktionary
다양한 볶음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볶음밥류 1만원 이하 ~ 메인요리 2만원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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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호에서 많은 분들이 라켓 9월호 우편 서비스를 신청해주셨습니다. 1차 발송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난 번 호에서 신청을 놓친 분들은 9월 8일까지 선착순 접수를 받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신청 가능 기간 : 8.31~ 9.8 / 발송 : 선착순으로 우편 발송 진행
금주 신청자 분들께는 추석 연휴 이후 순차 발송될 예정이오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무더운 여름 끝자락에 큰 태풍으로 인해 피해가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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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전시: Frieze Seoul - 프리즈 서울 맛보기
지난 호에 소개해 드린 세계 대형 아트페어 중 하나인 Frieze - 프리즈가 런던, 뉴욕, LA를 거쳐 다음 포석을 서울로 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방대한 취향의 현장에서 라켓 에디터가 발견한 눈여겨 볼만한 갤러리와 작가들을 이미지 위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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