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세 번째 라켓레터에는 '보안1942 _아트스페이스 보안1'에서 <얇은 밀도>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고있는 김지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12월의 ‘가고픈 전시’에서 이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갔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불안감’이라는 키워드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그 크기는 다르지만 불안감 속에 살고 있고 수없이 많은 불확실의 순간 순간을 지나죠. 김지은 작가는 자신이 작가로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이 들 때 마다 파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불안감이 큰 날에는 색이 더 진해지기도 하고 보다 가벼운 마음이 들 때는 옅은 색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파란색의 동그라미들은 각각의 표정을 가지게 되죠. 점토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불안감으로 인해 침몰했던 날들, 혹은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났던 날들이 모두 더해져 오늘의 <얇은 밀도>가 완성된 셈이에요.
편집/이미지 '마니'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불안의 얼굴들
사진(L) - 김지은 작가 제공 / 사진(R) - 라켓 촬영
Q) 수없이 많은 모양의 점토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장 곳곳에 다른 형태로 전시되어 있어요. 마치 인간 군상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점토를 주고 무엇이든지 만들어 보라고 하면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만들어져요. 아이들의 작품은 제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죠.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점토를 손으로 빚다 보면 ‘내가 정말 전시를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해요. 하루는 집에 들어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는데 ‘나는 항상 이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의 표정에는 결국 각자의 삶이 묻어날 테고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불안할 때 어떤 표정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과 그 표정들을 찾아봤죠. 그렇게 불안할 때 마다 만지작거린 점토들이 표정을 가지게 되고 전시를 위해 보다 다듬어지게 되었어요.
Q) 파란색 볼펜으로 그린 표정들도 불안의 결과인 걸까요?
2021년부터 한지에 파란색 볼펜으로 실타래를 엮듯이 동글동글하게 돌리면서 낙서하듯이 시작한 그림들이에요. 생각이 많은 날에는 자연스레 여러번 덧칠하게 되고 가벼워지고 싶은 날에는 드로잉 역시 가벼워졌죠. 어떤 표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다보니 어떤 덩어리감에 선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상이 만들어졌어요. 이 그림들을 벽에 붙여 놓고 보니 어떤 그림은 햇빛때문에 색이 바래지기도 했죠. 종이의 질감과 볼펜의 선이 겹쳐지는 것도 재미있었고 햇빛에 바래가는 소멸감도 좋았어요. 불안감이나 심각한 생각들이 시간이 지나다 보면 가벼워지잖아요. 내가 왜 이렇게 불안했었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모든 게 자연스레 맞아떨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사진(L) - 라켓촬영 / 사진(C),(R) - 김지은 작가 제공
Q) 대부분의 작품들이 밀도감을 지닌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작품의 주인공인데 반해 유화인 ‘야망의 하녀’는 그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그림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조금씩 커져요. 이번 전시를 하기 전까지도 ‘내가 정말 다시 전시를 할 수 있을까?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전시를 꼭 한 번 더 하고 싶어.’ 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제 몸은 편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계속 무언가를 향해 손을 움직여 작품을 만들죠. 예술도 결국 손으로 하는 일이고 그 손이 마치 하녀처럼 생각되었어요. '야망의 하녀'는 제 손의 모습이기도 해요. 언뜻 보면 움켜진 모습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얇은 막을 벗어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죠.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저는 벗어나는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Q) <얇은 밀도>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 중에는 바느질로 만든 작품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헐겁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실이 계속 당겨지면서 인상이 생기고 형태가 달라지기도 했죠. 바늘도 곳곳에 등장해요. 불안감에 가득 차있거나 뭔가에 되게 집중했을 때 예민해지는데 그렇게 열망하는 것들을 계속 바느질하듯이 엮으며 제 자신을 키워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갑으로 만든 설치 작품은 장갑이 잘려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하다가 만 것 같아 보이는 것도 있을 거에요. 미완의 작품들이 앞으로 계속 발전될지 아닐 지는 모르지만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출발점
사진(L) - 라켓촬영 / 사진(C),(R) - 김지은 작가 제공
Q)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드리려고 해요. 개인전의 출발 지점에 왜 불안감이 있었던 걸까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 없고, 그로 인해 불안한 날들을 보내던 중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답을 찾던 와중에 불안에 대한 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 ‘불안은 그냥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죠. 불안이 나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지만, 불안은 오히려 나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거에요. 살면서 필요한 자극이니 묵묵히 쉬지 않고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무엇이든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Q) <얇은 밀도>를 통해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좋은 순간에도 선택해야 하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불안에 빠져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살 수는 없어요. 어차피 불안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 불안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느냐 혹은 부정적으로 이용하느냐인 것 같아요. ‘자신의 선택을 믿고 묵묵히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어요. 불안감은 밝음과 어둠에 대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멈추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가 제게 남긴 숙제들이 다음의 제 전시에는 어던 식으로 펼쳐질 지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해보는 수 밖에요.
⚫ 장소 : 보안1942 _아트스페이스 보안1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33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오후 12시~ 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 기간 : 2022년 11월 30일~2022년 12월 25일 ⚪ 문의 : 02-720-8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