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전시 리뷰 ; 나의 잠 - 문화역서울
다녀온 전시,
당신 하루의 삼분의 일, <나의 잠 My slee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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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
밤새 안녕히 주무셨나요? 평소에 우리 인생 최대의 과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잠’을 이루기 위한 선행 활동을 충분히 행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만들고, 나아가 더 편안한 나로 거듭나게 하는 포근한 휴식 활동. 이불과 잠옷, 편안한 베개, 숙면 ASMR, 충분한 운동과 숨쉬기, Vitamin D, 완벽한 조도와 습도 등 우리가 매일 밤을 위해 갖추려는 소비재 그리고 공간의 조건이 있지요. 이렇듯 내 취향에 맞게 ‘나의 잠’을 위한 연출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잠이 들려 해도 네 생각에 벌써 새벽 세 시”처럼, 정작 내 마음대로 시작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잠’ 아닐까 싶어요.
이번 문화역 서울에서 선보이는 기획 전시 ‘나의 잠’은 ‘초-연결(hyper-connected)’의 시대에 순수하게 외부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무의식의 확보를 위한 사유를 다양한 형태의 미술적 표현으로 조명합니다. 잠 못 이루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잠을 건전지처럼 빼주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이 앞서도 결코 나와 분리할 수 없는, 순수하게 나에게 속한 불가침의 영역인 ‘잠’에 관한 흥미진진한 사유를 라켓과 함께 들여다보세요.
편집/이미지 '보보'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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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1
나의 잠, 너의 잠 -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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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전시 전경, 김홍석 - 침묵의 공동체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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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부근에는 한뎃잠을 취하는 노숙인이 많습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비 오는 길 위에도, 가파른 계단 위에도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채로 잠을 자는 사람들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특수한 타인의 사적인 수면 한가운데를 공공연히 가로지르며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을 뒤로한 채 화려한 전시 현수막이 걸린 고풍스러운 구서울역사 건물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왠 당나귀 탈을 쓴 사람이 누워있네요? 누군가의 잠을 외면하지 말라는 듯한 메시지가 더욱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이 풍경은 작가 김홍석이 초대한 <침묵의 공동체>로서 당나귀, 곰, 돼지, 강아지, 원숭이 등의 탈을 쓴 각자의 사연을 가진 연기자들입니다.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굉장히 프로페셔널 하여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다양한 사연을 표지판에 내세운 채로 잠의 제스처를 취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침묵’은 자면서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잠이 효자가 아닐 수 없는 기분이 들더군요. 하지만 깨어나서 움직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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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전시 전경, 워드 워크스 - 좋을 것 같아요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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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인에게 잠은 양날의 검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절대적으로 채우고 잘 달래줘야 하는 욕구 중 하나인 수면은 숨길수록 이롭고 줄일수록 위대해 보입니다. 최근 유행한 ‘미라클 모닝 챌린지’처럼 잠을 쪼개고 아껴 쓰는 근면한 태도들을 전시할수록 사회는 잠들지 않는 곳이 됩니다. 텍스트를 주로 다루는 콜렉티브 ‘워드 워크스’의 그래픽을 통해 잠에 드리우는 부정적인 시선을 들여다보니, 마치 ‘잠 은행’에서 뿌린 듯한 ‘찌라시’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잠을 빚지고 있는지 문득 아찔함이 몰려오며 나의 근면함을 반성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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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전시 전경, 스튜디오 하프-보틀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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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다소 엉성한 마스킹 테이프의 흔적과 어떤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채 한 평이 안 되는 매우 적은 영역 표시입니다. 이는 잠의 통계적 형태를 빗댄 도식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이 자기 몸을 누일 수 있는 권력과 서사의 정량적인 면적을 나타냅니다. 개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에 대한 질문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에서 다루는 ‘하루 동안 표시할 수 있는 땅’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죽어버린 소작농 바흠의 이야기에서 착안하였다고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는 데이터를 몸소 체험 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구역입니다. 왠지 정신이 번쩍 드는 질문을 받은 채로 계단을 올라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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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2
반쯤 잠들기 -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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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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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붉은 카펫이 깔린 접견실에는 다양한 설치물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도 로와정 작가의 <스크린세이버> 프로젝션 비디오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컴퓨터와 디스플레이가 일시적으로 잠이 드는 휴지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이미지나 영상을 가르키는 동명의 ‘스크린세이버’는 실제 컴퓨터 스크린에서 볼 법한 영상들이 떠다니며 잠의 기능과 경제성 등에 대해 역사적인 이미지들과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포근함이 아닌 경제적인 모습의 타인의 잠을 살펴보며 나는 부디 저렇게 자면 안 되겠다는 ‘타산지석’의 마음가짐으로 자리를 옮겨 봅니다. 하지만 연속해서 잠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니 왠지 나른한 기분이 몰려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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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심우현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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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나의 상태보다 더욱 나른한 회화가 펼쳐져 있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도록 잠들어 있는 미소년인 ‘엔디미온’의 모습을 담은 관능적인 일련의 회화는 영원 속에 숨은 사랑의 대상과 시간을 향한 역행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거대하게 꿈틀대는 색채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 마치 꿈을 꾸는 어떤 이의 머리 속 한 가운데 와 있는 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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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4
함께 잔다는 것 - 새벽에 한번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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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박가인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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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이미지들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보니, 더욱 현실적인 이미지가 들어 옵니다. 누군가의 적나라한 사생활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풍경 속에는 한 남성의 팔에 안긴 무표정의 여성의 얼굴과 방금 막 자취를 남기고 떠나간 잠자리가 혼재해 있습니다. 이 마구 뒤섞인 풍경을 보며 ‘함께 잠드는 일’로서의 수면 방식을 떠올려 봅니다. 휴식보다 욕망이 가득한 이 방 한쪽에 보이는 둘둘 말린 이불이 마치 내가 아는 누군가의 자화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문득 아침에 떠나온 나의 이부자리를 돌이켜 보며 항상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이불을 잘 정리해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드는 묘한 엿보기 체험의 장을 떠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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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무진형제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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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흘러나오는 영상 안에서 노인이 쪽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노인은 실제 무진형제의 조부로서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라는 영상에 출연하며 평범해 보이는 소외계층의 잠과 야간 노동자로서의 신화적 이야기의 궤적을 함께 합니다. 한 마을에서만 살아온 노인의 삶의 방식과 신체의 변화 그리고 잠꼬대가 중첩된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불면의 노동과 이것이 드러내는 시대적 징후와 불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의 잠을 전시하는 일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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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 포인트 5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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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오민수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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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의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을 살아가는 택배 노동자를 상징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박스들은 경제적 순환을 위해 사용되는 잠의 이면을 극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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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2층 전시 전경, 유비호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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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빛이 새어 나오는 방으로 가는 길에 무한한 태풍의 전조를 담은 거친 하늘의 이미지를 보며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비로소 들어온 방에는 예언자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가 처한 다양한 사건들 속의 갈등과 대립에 대한 피안으로부터 도달한 경구들을 마치 잠꼬대하듯이 읊조리며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를 듣는 깨어있는 우리들 보다 더욱 각성한 느낌을 전달하는 점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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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 1층 전시 전경, ©문화역서울284, LARKET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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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모두 둘러보고 1층에 내려오니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관람객들이 아늑한 정취를 전달합니다. 생각해보니 에디터는 주말 아침의 늘어지는 달콤한 늦잠을 반납하고 <나의 잠> 전시에 다녀왔고, 그만큼 이번 전시는 잠을 아낀 만큼 쉬면서 볼 수 있는 편안한 관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엔 충분한 수면을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휴식은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원하는 만큼의 잠을 자고, 모쪼록 때를 놓치지 말고 잠들 수 있는 나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밤에도 안녕히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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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문화역서울284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1구 서울역 (본옥)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화-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 매주 월요일 휴관 / 마지막 입장 오후 6시 30분
⚫ 기간 : 2022.09.12 까지
⚪ 문의 : 02-3407-3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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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포근한 이불과 네모반듯한 침대를 떠올리게 하는 신비한 디저트 밀푀유. 전시장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연남방앗간’에 들려 아늑하고 바삭한 맛의 다양한 밀푀유와 음료를 맛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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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연남방앗간 (서울역점)
⚫ 위치 : 서울 중구 통일로 1
⚫ 영업 시간 : 월-금 8:00-20:00 / 토,일 11:00-20:00
⚪ 문의 : 070-4190-5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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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가능 기간 : 8.17~ 8.23 / 발표 : 신청 시 등록한 정보로 개별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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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굿즈는 Casetify를 통해 주문형 제작 방식으로 제작 예정이며, 당첨자 선정부터 당첨자 분께 배송되는 일정은 약 3주 소요 예정입니다. 당첨되신 분들께는 개별 연락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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